1969년 귀곡동 물에 잠겨 실향
19일 진양호 가족쉼터 공원서 행사

귀곡실향민 행사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고향사람들이 포옹을 나누고 있다.
귀곡실향민 행사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고향사람들이 포옹을 나누고 있다.

[경남뉴스 | 이세정 기자]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화 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동요 '고향' 가사가 울려 퍼지는 진양호 가족공원 내에 마련된 실향민 행사장. 지난 19일 약속시간인 오전 10시 30분경 실향민 100여 명이 모여 반가운 고향 사람들과 손을 마주 잡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우리는 고향 생각만 하면 마음이 저릿하게 아립니다"

진주시 진양호 가족쉼터에 설치된 행사장을 바쁘게 오가며 행사 준비를 하던 귀곡 초등학교 총동창회 김희자 총무(60)는 고향 이야기에 눈빛이 아련해진다.

"호수 안에 잠든 까꼬실 마을을 생각하면 나이가 들수록 고향분들, 친구들, 살던 집이 눈에 훤하게 그려지며 그립습니다"라며 "그래도 1년에 한 번씩 실향민 행사가 있어서 반갑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합니다"며 환하게 웃었다.

남강댐 전경(사진=실향민 정옥녀 제공)
남강댐 전경(사진=실향민 정옥녀 제공)

1969년, 진주시 판문동 소재 까꼬실(귀곡)마을은 257가구 1467명의 주민이 까꼬실 등 10여 개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지만 남강댐과 함께 찾아온 수몰로 마을은 반 이상이 잠겨버렸고 많은 이들이 집과 농지를 잃고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수몰 이후, 각자의 살길을 찾아 떠나야 했지만 귀곡 초등학교 총동창회라는 구심점으로 매년 실향민 행사를 개최하며 떠난 고향민들을 한곳에 모이게 했다.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행사를 하지 못하다가 3년 만에 마스크를 벗고 제대로 반가운 얼굴을 마주했다.

개회식을 선포하고 국민의례하는 귀곡실향민들.
개회식을 선포하고 국민의례하는 귀곡실향민들.

식순은 정항섭 동문의 색소폰 연주를 시작으로 사물놀이, 초청가수 공연, 노래자랑 등으로 행사가 이어졌다.

"가쓰나 일로 와서 인사해라"

실향민들은 정겨운 사투리로 서로 안부를 물으며 주최측이 마련한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며 좋은 한때를 보냈다. 

까꼬실 마을에 시집온 며느리 박영순(67)씨는 "시집온 첫해 설에 파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 한복을 입고 진양호 선착장서 배를 타고 가는데 얼음이 두껍게 얼어 추운데도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라며 그시절을 추억했다.

반가움에 담소나누는 고향사람들.
반가움에 담소나누는 고향사람들.

귀곡 실향민회 정기운 부회장(69)은 "우리는 고향이 그리워서 올해뿐 아니라 매년 연례행사로 하고 있다"라며 "최근 3년간은 코로나 때문에 가능하면 모임을 축소해서 하는 관계로 이번에도 참석인원이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아쉽다"라면서 "까꼬실이라는 고향 자체가 해주 정씨 350년 된 집성촌이고 수몰될 때까지 산 세대가 270여 가구쯤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까꼬실 마을에 해주 정씨가 차지하는 비율이 50% 이상 되고 다른 성씨들도 더불어 잘 살아갔다"라며 "친척이고 형제 같고 그런 친구들을 한 동네에 모여 살면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을 텐데 자주 못 본다는 것이 섭섭하고 아쉽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돼 만난 고향민 김영식(72), 조상석(78,부산 거주)는 서로 반가움에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실향민 행사 장소가 매년 바뀌는 점이 아쉽다"라며 "그래도 1년에 한 번씩 만날 수 있어 반갑고 좋다"며 고향사람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날 오후 마무리 순서가 되자 실향민들은 1년 후를 기약하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귀곡동 까꼬실에 들어가는 진양호 선착장.(사진=실향민 박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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